Needling Whisper, Needle Country / SMS Series in Camouflage / Big Smile 01-001, 2014-2015 |
Detail from Needling Whisper, Needle Country / SMS Series in Camouflage / Imagine 01-001, 2014-2015 |
Needling Whisper, Needle Country / SMS Series in Camouflage/ Imagination is a political matter Series 01-01, 02-01, 2014 |
Installationfoto |
채운 색 면들과 이미지들이 그 색을 발하고 있다.
이는 함경아 작가의 자수 시리즈 작품들로 가까이에서 보지않으면,
그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촘촘하고 섬세한 작업이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에는 함경아 작가의 2012년부터 2015년까지의 자수시리즈
작품들이 국제 갤러리의 두 전시장, K2, K3에서 보여지고 있다.
"상상은 정치적인 (것이다.) 상상해라. 상상은 정치적인 것이다."
유난히 두껍고 큰 글씨체로 쓰인 "상상하라"는 문구를 중심으로
그 위 아래에 상상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 문장들 뒤로 아련히 피어오르는 안개마냥, 자수가 되어 있다.
색감이 조금 다른 두 개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언뜻 인상파 화가
모네의 루앙성당 작품이나 후기 인상파 화가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빛에 따라 변하는 루앙성당의 인상을
담으려는 시도도 엿보이지도 않으며, 쇠라의 대표작인 "그랑 자뜨 섬의
일요일 오후"(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 에서 처럼 근대
산업화가 이루어진 시대에 일요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가로운 사람들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녀의 작품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으며,
어떠한 장르에 속한 것인가. 필자는 그녀의 자수작업
시리즈를 "개념 미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의함으로써,
그녀의 작품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이번 시리즈의 이미지 표현에 있어 주된 방식인 카모플라쥬는
동물이나 곤충이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서, 주변의 환경과
같은 무늬나 색깔,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군인들의 군복이 그러한 원리를 따르는 예중 하나라 하겠다.
카모플라쥬에 의해 캔버스안에 숨겨진 짧은 문장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남긴다.
"Are You Lonely, too?"
"그대도 나와 같다면"
"Big Smile"등은 단어, 질문, 명령과도 같은 문구들은
간결한 어조로 되어, 작품에서 눈을 뗀 후에도, 유행가 가사처럼
기억속을 맴돈다. (실제 "그대도 나와 같다면"은 가수 김장훈의
노래 타이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화려한 색상과 흐트러진 모티브들이 캔버스전면을
채우고 있으며, 무언가를 지시하는 문장은 보는 이에게
이를 색면 추상화나 하나의 아름다운 이미지로 감상하는
여유를 빼앗고, 감성을 혼란시킨다.
이는 관람자의 지위에 대한 "개념미술"저서의 저자 토니
고드프리에 의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관람자의 지위는 자꾸 되풀이되는 주제이다.
캐프로는 설치와 해프닝에 관해 쓰면서,
참여자가 되는 데서 관람자는 사실 대상이나 회화와 같으며,
도구나 지침서는 마치 캔버스천과 같다고 했다.
적극적인 참여는 정신적인 수준에서도 요구되었다.
관람자는 사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것은 리파드가 "시각적인 음악"이라고 묘사한
줄스 올리츠키(Jules Olitski)의 그림과 같은 당시의 형식주의
그림들이 관람자에게 부여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다른 역할이었다.
그러한 그림들에서 우리는 화려한 색채들을 즐기면서
안락의자에서 쉬는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개념 미술에서 관람자는 지적인 불편함 속에 서 있게된다.
또한 이러한 불편함을 "작가의 죽음"을 논한 롤랑 바르트는
"작가적인"텍스트라고 표현하는데,
그는 이러한 텍스트를 독자가 처음에는 성가시게
느끼고 그 다음에는 반응하게 되는 텍스트라고 정의내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어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작가의 작업을
전부 이해했다고 볼 수 있을까. 왜 작가는 비슷한 주제와 이미지들로
형성된 여러 작품들을 전시장안에 함께 설치하거나, 더 나아가
하나의 시리즈로 된 예술품(오브젝트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인가.
반복성은 (시리즈로 대표되는) 개념미술의 논의에서 언급되어 온
속성중 하나이다. Mel Bochner는 반복을 통해 의미의 대상 혹은
어떠한 특별함(기호)를 지우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고드프리는 이에 대해 위계적인 구성질서에 대한 거부라는 측면에서
더 나아가 이는 이미지의 반복을 통한 어떠한 "마취적인"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코 결코 결코 결코 결코"라는 다섯 번의 반복이 배우와 독자에게
어떠한 식으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 캔버스들은 그녀가 북한으로 보내는 "메세지"들을 담고 있으면서,
미국 추상회화의 거장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의 작품의 이미지
위에 인터넷과 신문에서 발견한 기사들을 자수로 새겨 넣거나,
사과 껍질이 우주안에 떠 다니는 듯한 모티브를 담고 있는 작업등을 통해,
"서구의", "북한에서는 반역이라고 불리우는 추상화 방식을", "현대의"
그리고 사과 껍질의 경우 "작가가 느낀 것들을" 2008년 병풍이미지 작업을
시작으로 북한인들에게 전달해왔다.
(그녀는 북한에서는 사실적 투영이외에 추상표현을 통한 개인적
순수한 감정과 상상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체스판이 동틀 녁까지 그들을 지체시킨다. 두 색이 증오하는
냉혹한 영역에"에 나타나는 사과 껍질은 탈북자들이 사과를 남한에서
처음 접하고, 그 맛때문에 하루에 다섯개씩 먹게 되었다는
인터뷰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이 캔버스들은 작업이 진행되어 온 지난 시간들, 작업의 프로세스,
작가의 북한에 대한 단상들, 그녀가 갤러리 안으로 들여온 담론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담론의 장으로써의 갤러리라는 공간뿐아니라, 박물관이라는
곳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데, 작가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들이 어느 날 박물관에 소장되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한시대가 지나 분단상황이 사라지면 지금 이 시대상황을 증언하는 예술적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선재 미술관에서 "욕망과 마취"전을 통해,
서구열강들이 지난날 "수집"해온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미술작품의 상품
Commodity로써의 가치에 대해서도 논의될 수 있으나, 이번 글에서는
생략하려 한다.)
남한의 국경을 넘는 행위를 통해 전달되었음을 작품의 재료
표시형식으로 제시한다: North Korean hand embroidery,
silk threads on cotton, middle man, anxiety, censorship,
wooden frame, approx. 1400hrs/ 1 person
이러한 재료에 대한 설명은 개념 미술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데, 고드프리는 아래와 같은 예를 들며, 이것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스미드슨은 카탈로그에 자신의 작품 "저온구체"(The Gyosphere)
에 관해 쓰면서 스프레이 물감의 화학적 구성과 기본 단위 연속체에
대한 긴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는 미술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로맨스를 해체시킨다. 이것은 "미술-신비"를 특히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술-신비"라는 의미는 미술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미술가의 천부적 재능, 어느 날 미술가에게 하늘로 부터 내려진 영감등
이러한 미술작품에 있어 한 작가를 신과 비유 될 수 있는 존재로까지
끌어 올리는 신화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함경아 작가는 이 작업 시리즈를
하게 된 계기로 "어느날 집 앞에서 삐라를 발견한 일"을 언급한다.
사실 이는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삐라에서, 어느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함경아 작가는 그녀가 만들어 낸 화면안의 이미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캔버스, 그 이면의 것들을 볼 것을 "제안"하고
있는 듯하다. 노동은 시간으로 환산되어 있으며, 심리적 상태나 사회적
현실이 "anxiety"나 "censorship", "middle man"등의 단어로
축약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1400 시간은 이 캔버스를 빼곡히 수놓는 북한
수공예자의 노동이 지속되었을 밤과 낮을, 그녀가 보낸 이미지들을
이들이 대면하였을 시간들을 생각해 보게 한다.
(디지털 프린트 천위에 이미지들이 북한 수공예자들을 통해,
그 색에 맞는 색들로 자수되어 지는 작업은 작업에 있어서
원본 이미지보다 화려한 색상들로 바뀌어 돌아온다고 한다.
그들의 작업환경이나 시각문화, 색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보게도 한다.)
이 작품의 완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middle man또한
익명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이미지프린트를 북에 전달하고, 그 결과물을
남으로 이송하는 사상의 경계에 선 회색인이면서, 동시에 탈북을 돕는
중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본주의의 법칙을 철저히 따르는 이들이자,
분단의 현재 상황을 대변하는 특수한 존재들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자수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단지 북한과의 관계를 떠나
이 작품이 정작 누구의 작품인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수 없게 한다.
1400 시간의 노력이 들어간 혹은 그 이상의 노력과 정성이 든 작업들은
그 수공예자의 작업이지는 않을까.
개념미술 작가 발데사리는 "네 개의 의뢰된 그림"(1969-1970)에서
지나가던 거리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것들을 손으로
지시하는 사진을 찍고, 이를 14명의 아마추어 화가들에게
보내어, 그들이 선택한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고드프리는 이에 과연 누가 이 작품의 작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여기서 원고나 악보를 제공한 감독 또는
작곡자와 비교될 수 있다. 저작권은 이를 실행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보다, 이러한 "개념"을 확립한 사람의 것인 것이다.
그녀의 자수를 통한 회화에 대한, 개념적 접근은 K3 전시장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한다.
바뀌어 있다.(영화나 필름의 상영공간을 위한 어두운 공간처럼)
블랙큐브로의 전환뿐 아니라, 캔버스가 설치대에 위치되어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캔버스들이 전시장 벽에서 해방되어, 공간안으로 들어온 격이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흔들리는 듯, 혹은 이미 떨어진 상태로,
각기 하나의 샹들리에 모티브가 까만실로 자수된 배경의 캔버스
중앙에 위치된 작품 5점이 관객의 시선과 발걸음을 이끈다.
어느 성을, 혹은 거대한 호텔과 빌딩의 로비를 빛내고,
이들을 소유한 이들의 지위와 부, 권력의 상징이었을 샹들리에는
지금 갤러리의 빛을 받아 "흔들리며", 어둠 속의 "빛"이 되고 있다.
함경아 작가는 "오데사의 계단"작품을 통해서, 전직 대통령의 폐가에
버려진 물건들을 전시장으로 옮겨와 계단형식의 조형물에
설치한 적이 있다. 그녀는 왜 이러한 "쓰레기"를 "모아"서 "전시"하였는가.
이는 어둠속에 있던 사회상과 그 이면의 진실이 작가에 의해 포착되고,
응집의 과정을 통해, 시각화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처음에는 어둠이었다." 라는 문장이 우주 공간에 투영된 듯
다양한 크기의 빛들이 빽빽한 검정색 자수사이로 보인다.
이는 What you see is the unseen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빛과 어둠,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이를 공간이나
오브젝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확대시켜 "보이게 끔"하는
빛과 같은 역할로써의 작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작품의 제목들과 재료, 도구에 대한 설명은 그녀의 작품이
"캔버스에 놓은 자수"라는 한 자수 장인의 "공예품"에
지나지 않음을 극명히 한다. 작품에 나타난 언어나 다양한 이미지의
조합은 하나의 도상이나 극명한 이야기를 대체함으로써,
보는 이의 상상력(혹은 이 "유령의 발자국소리"를 듣는 이)을
통해 풍부해 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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